건축물철거 전문기업 에스이산업개발

   정씨는 바로 1주일 전 아찔한 일을 겪었다. “아들을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분명히 보행신호가 켜졌는데도 불구하고 우회전하던 차량이 그대로 돌진하더라고요. 아들을 껴안고 땅바닥을 굴렀죠.” 다행히 차가 두 사람을 치기 전에 멈춰서서 다치지는 않았다. 학부모들의 끈질긴 요청 끝에 이 구역은 곧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정씨는 “어린이집 인근은 당연히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도 어린이가 제대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 위반 건수는 하루 평균 480건이 넘는다. 지난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만 해도 81건이다. 이 중 89%가 차량과 어린이가 직접 부딪치는 사고였다. 지난해 4월에는 서울 동작구의 어린이집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5살 어린이가 지나가던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30㎞다. 그런데 황준승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어린이 보호구역 주변 단속 카메라를 조사해 보면 일반 도로의 기준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구역만 지정돼 있을 뿐 단속도,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1999년 6월 30일은 경기도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불이 나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날이다. 대전 서구에서 4살, 3살 딸을 키우는 최경은(35)씨는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때 희생당한 어린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 어린이집은 화재 예방에 철저해졌을 줄 알았어요.” 최씨의 목소리는 기자와 통화하던 30분 동안 내내 떨렸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서 어린이집에서 참관수업을 했어요. 문득 생각이 나서 원장님께 ‘여기 소화기는 어디 있나요?’ 물어봤어요. 원장님이 난처한 듯 웃으며 ‘곧 사려고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이거 불법 아닌가요?” 기자가 확인해 보니 이 어린이집에는 소화기가 2대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소방법에 따르면 방마다 소화기가 배치돼 있어야 한다.(다중이용업소의소방시설등의화재안전기준 제4조 1항) 이 사실을 알리자 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의 지적을 받자마자 소화기를 다 구입했다”며 역성을 냈다.

   지난 5월 12일 기자는 6살 유해민(가명)의 ‘이모’가 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해민이가 이 어린이집에 다닌 지 2년이 지났는데, 화재예방 교육을 받은 것은 딱 한 번뿐이다. 해민이의 같은 반 친구 11명 중에 소화기 사용법에 대해 아는 어린이는 단 세 명. 그마저도 어린이집에 비치된 투척식 소화기가 아니라 분말식 소화기 사용법이었다. 어린이집 교사 박모씨는 화재예방 교육과 관련된 기자의 문의를 받고 “학부모들의 문의가 많아 이 달 중에 소방 교육을 받으려고 하고 있는데 단체교육 일정이 밀려 있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산소방서 예방팀 안득현 소방교는 “최근 들어서 소방 교육에 대한 문의가 최소한 2배 이상 늘고 있다”며 “어린 아이를 둔 학부모 중에는 직접 아이를 데리고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소방 교육이 잘돼 있고, 소방법을 준수한다고 해도 어린이집 화재예방의 걸림돌은 많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현재 학부모들의 서명을 받아 행정기관에 제출할 청원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어린이집 바로 옆에 세워진 조립식 건물 때문이다. 7살 아들을 두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불이라도 나면 바로 옮겨 붙을 정도로 건물이 가깝게 붙어 있어 걱정된다”고 제보해 왔다. 어린이집 바로 옆의 땅 주인이 세운 창고인데, 학부모와 교사들의 항의에도 땅 주인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은 “비슷한 화재 사고를 예로 들어 설득해 봐도 어린이집 안전에 대해 별반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4일에는 충북 청주의 한 어린이집 근처 조립식 건물에서 피다 만 담배꽁초에서 불이 옮겨 붙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히 일찍 진압돼 옆 어린이집 건물로는 불이 번지지 않았지만 큰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다.

   사건·사고를 제외하고도 어린이집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3살, 6살 남매를 서울 마포구의 한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이성훈씨는 어린이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성인들을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고 한다. “어린이집 근처는 당연히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울시에서도 몇 개 구만 그렇게 하더라고요.”

   4살 된 조카를 기르는 이씨의 처남은 지난해 ‘석면’ 때문에 어린이집을 옮기기도 했다. “선생님 1명당 관리하는 어린이 수가 적은 어린이집을 선택한다고 했다가 뉴스를 보고 마음을 바꿨대요.” 이씨의 처남이 본 뉴스는 수도권 소규모 어린이집 10곳 중 3곳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2012년 석면안전관리법이 시행돼 연면적 430㎡ 이상 어린이집은 석면 조사기관에 의뢰해 건축물 내 석면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체 4만493개 어린이집 중 연면적 430㎡ 이상인 어린이집은 4500여곳에 불과해 10% 정도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용익 의원(새정치민주연합·비례대표)이 지난 10월 밝힌 자료에 따르면 연세대 의과대학 환경공해연구소가 법령에 구애받지 않는 소규모 어린이집 100곳을 선별해 조사한 결과 30곳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식품 안전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를 둔 학부모들은 특히 불안할 때가 잦다. 통계청의 2012년 사회조사를 보면 식품 안전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한 국민은 전체의 33.4%였는데, 학생 자녀를 둔 국민 중에서는 36.6%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어린이집 중 급식 시설을 갖춘 50인 이상 어린이집은 관할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소규모 어린이집은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의 관리를 받게 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이런 관리를 받는 어린이집은 21%에 불과하다. 자격증을 갖춘 조리사, 영양사가 없는 급식소도 많아 매년 적발되는 건수가 늘고 있고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급식소도 많다.

   기자가 찾아간 해민이네 어린이집은 석면 조사는 물론 급식센터의 급식 관리를 받지 않는 곳이다. 원장과 어린이집 교사 한 명이 번갈아 가며 조리를 하는데 원장은 조리사 자격증이 없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고, 교사들의 전문성이 높은 곳으로 소문나 있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불안한 부분이 더 많은 셈이다. 해민이의 부모 박은아(가명·38)씨와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 정지연(가명·35), 김대희(가명·36)씨는 기자의 취재 내용을 전해 듣고 나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마저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겨우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정비된 것일 것 같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박씨 역시 “안전 ‘교육’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새 어린이집 안전은 이미 구멍 나 있었던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의 옆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정씨가 한 신문기사를 인용하며 물어보았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도 안교육을 연간 44시간 이상 해야 한다는데, 이건 제대로 되고 있을까요?”

   기자는 발길을 돌려 다시 해민이네 어린이집을 찾았다. 대답을 꺼리던 원장은 “(교사들이 안전교육을) 아직 받지 않았다”고만 답했다. 안전행정부와 교육부가 지난해 10~11월 전국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교사 2만15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 안전교육 실태 조사’ 결과 안전교육 의무시간을 준수한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는 전체의 30.6%에 불과했다. 19.1%의 교사는 아예 안전교육이 의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들은 학부모 정씨는 “결국 또 학부모들이 나서서 일일이 다 챙겨야 할 것 같다”며 “어린이집은 아이를 부모 대신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생각해 보내는 곳 아닌가요?”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